2023년04월15일 11번
[과목 구분 없음]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 ① 박위가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 ② 윤관이 별무반 설치를 건의하였다.
- ③ 김윤후가 처인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 ④ 김춘추가 당과의 군사 동맹을 성사시켰다.
(정답률: 56%)
문제 해설
정답> ②
왼쪽 그림에 '우리 여진이 부모의 나라인 고려에 말과 담비 가죽을 바칩니다'는 말에 현종이 '의복과 은그릇을 답례로 보내겠노라'는 대답이 나와 있다. 오른쪽 그림에는 '금이 강성해져 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는 이자겸의 말이 나와 있다(상대자인 인종은 대답 없음). 현종 대에 (동북)여진이 조공한 것은 현종 3년인 1012년의 일이다. 함경남도 영흥군인 화주에 와서 맹약하기를 청하였다. 그런데 사실 이후에는 동여진의 해적이 크게 일어나 동해안을 따라 약탈을 자행함으로써 큰 문제를 일으켰다(울릉도와 독도 주민 피해). 예종과 인종의 장인인 동시에 인종의 외조부였던 집권자 이자겸(?~1126)의 주장으로 금과 사대 관계를 맺은 것은 인종 4년인 1126년의 일이다.
*고려의 대여진 회유 정책: 고려 초기에 여진은 고려를 상국(上國)으로 섬겼고, 고려는 이들를 회유하여 무역을 허락하고 귀화인(歸化人)에게는 가옥과 토지를 주어 살게 하였다(숙종 대까지 고려의 회유 정책에 의해 여진과 평온 상태 유지). 당시 여진인은 활·말·화살·모피 등 전쟁 도구를 조공(朝貢)하고, 의료품·식량·농기구·그릇 등 생활필수품을 주로 수입해 갔다.
윤관(1040~1111)이 별무반 설치를 건의한 것은 고려 숙종 9년인 1104년의 일이다. 별무반은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구성되었으며 예종 2년인 1107년에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축조하였다.
오답 해설>
① 박위(?~1398)가 대마도[쓰시마섬]을 정벌한 것은 고려 창왕 원년인 1389년의 일이다. 참고로 쓰시마섬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여러 차례 토벌되었는데 조선 시대에는 이종무(1360~1425)가 세종 원년인 1419년에 쓰시마섬을 다시 토벌한 것이 대표적이다.
③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몽골의 적장 살리타(?~1232)를 사살하면서 전투에 승리한 것은 몽골의 제2차 침입 시인 고종 19년인 1232년의 일이다(처인성 전투)(처인부곡의 항전).
④ 김춘추(603~661)가 당 태종(재위 626-649, 제2대)을 맞나 군사 동맹을 성사시킨 것은 신라 진덕 여왕 2년인 648년의 일이다(나당 동맹).
왼쪽 그림에 '우리 여진이 부모의 나라인 고려에 말과 담비 가죽을 바칩니다'는 말에 현종이 '의복과 은그릇을 답례로 보내겠노라'는 대답이 나와 있다. 오른쪽 그림에는 '금이 강성해져 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는 이자겸의 말이 나와 있다(상대자인 인종은 대답 없음). 현종 대에 (동북)여진이 조공한 것은 현종 3년인 1012년의 일이다. 함경남도 영흥군인 화주에 와서 맹약하기를 청하였다. 그런데 사실 이후에는 동여진의 해적이 크게 일어나 동해안을 따라 약탈을 자행함으로써 큰 문제를 일으켰다(울릉도와 독도 주민 피해). 예종과 인종의 장인인 동시에 인종의 외조부였던 집권자 이자겸(?~1126)의 주장으로 금과 사대 관계를 맺은 것은 인종 4년인 1126년의 일이다.
*고려의 대여진 회유 정책: 고려 초기에 여진은 고려를 상국(上國)으로 섬겼고, 고려는 이들를 회유하여 무역을 허락하고 귀화인(歸化人)에게는 가옥과 토지를 주어 살게 하였다(숙종 대까지 고려의 회유 정책에 의해 여진과 평온 상태 유지). 당시 여진인은 활·말·화살·모피 등 전쟁 도구를 조공(朝貢)하고, 의료품·식량·농기구·그릇 등 생활필수품을 주로 수입해 갔다.
윤관(1040~1111)이 별무반 설치를 건의한 것은 고려 숙종 9년인 1104년의 일이다. 별무반은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구성되었으며 예종 2년인 1107년에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축조하였다.
오답 해설>
① 박위(?~1398)가 대마도[쓰시마섬]을 정벌한 것은 고려 창왕 원년인 1389년의 일이다. 참고로 쓰시마섬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여러 차례 토벌되었는데 조선 시대에는 이종무(1360~1425)가 세종 원년인 1419년에 쓰시마섬을 다시 토벌한 것이 대표적이다.
③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몽골의 적장 살리타(?~1232)를 사살하면서 전투에 승리한 것은 몽골의 제2차 침입 시인 고종 19년인 1232년의 일이다(처인성 전투)(처인부곡의 항전).
④ 김춘추(603~661)가 당 태종(재위 626-649, 제2대)을 맞나 군사 동맹을 성사시킨 것은 신라 진덕 여왕 2년인 648년의 일이다(나당 동맹).